(저번주와 이어집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고 사랑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2년 전에 저렇게 강렬한 경험과 배움을 얻어놓고 주님 앞에 바르게 서 있지 않고 멀어지는 순간 다 까먹고 살아가는 약하디약하고 악한 사람입니다. 오늘 간증설교를 준비하면서 ‘와 이렇게 약자를 생각하는 얘는 누구지 분명 나는 아닌데’라는 생각도 들 정도로 저는 스스로 선한 것 하나 만들어 낼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누가 자신을 크리스천이라 소개하면서 선을 베푸는 걸 보시면 아 저 사람은 전에 진짜 나쁜 사람이었나 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쁘면 나쁠수록 주님을 영접해 180도 바뀌었을 때 그 폭이 크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악인을 보면 소망을 가지고 기도해주세요. 한 악함 하는 저도 비록 딱히 이룬 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저를 토론토 다운타운으로 이끄신 하나님이시니까요. 혹시 누가 압니까? 주님께서 김정은이나 푸틴을 바꾸실지 말입니다. 우리 하나하나 아무리 소망이 없어 보이고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보여도 주님이 원하시는 일꾼으로 또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시는 주님입니다.
제가 나눌 두 번째 파트는 코로나가 터지고 많은 것들이 락다운되고 나서의 이야기입니다. 예전 워터루에서 목자로서 섬기면서 저는 매달 주님 안에서 변화가 있는 은혜의 경험 때문에 목장이 즐거움과 보람됨으로 가득했습니다. 물론 저의 인생이 매일 행복과 성령 충만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부정적인 에너지는 언제나 목장을 통해 위로받았고, 회복돼서 나누는 간증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토론토에 와서도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를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규모가 있는 교회보다 작은 교회를 선호했던 저는 토론토 등대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등대교회에 가서도 목원으로서 있으면서 계속 목자의 꿈을 놓지 않고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의 일원으로써 다시 목자로서 섬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목자로서 섬길 수 있는 타이밍과 장소를 바로 허락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집에서는 지하 아니면 거실에서 생활했기에 목원들을 초대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그래서 뭐라도 붙잡으려고 시작을 한 노숙자 전도도 코로나 사태로 막혔습니다. 이렇게 영혼들을 섬기지 않고 있는 시간이 흘러만 갈수록 저는 하나님의 마음과 눈이 향해 계신 곳과는 멀어져만가 무뎌져 가는 것 같았고 불같았던 영혼 구원의 목표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의 이치와 진리인 십자가 그 구원의 의미를 모르고 꺼져가는 자들의 모습을 보며 흘리던 눈물들은 말라져 가는 것만 같았고, 비록 육신과 재정은 신경 쓸 것이 줄어 편했지만, 영혼 구원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 점점 더 꺼져가는 매일매일 느꼈습니다. 목자로서 섬길 때는 기도할때마다 소리를 쳐 가며 중보하고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지 않는 날이 없었는데 이제는 ‘나는 과연 주님과 매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난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아쉬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마음 더욱 커져갈 때에 같이 살던 친누나가 이사해 이제 저의 거실 생활이 끝날 때에 워터루 때부터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동생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코로나 시작 전부터 교회에 발을 끊고 교회와 멀어져 있다는 얘기를 듣고 목장 모임을 할 수 있는 장소와 구원해야 할 영혼 모두 보이게 되어 ‘아 이제 때가 되었구나’ 느껴 그 친구와 연락하여 약속을 잡고 그 친구의 오픈된 마음을 위해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시기와 상황을 주시는 이 일이 작년 다니엘 금식을 하던 부활 주일 중에 일어난 일이기에 더더욱 의롭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주일간 다니엘 금식을 하며 정말 오랜만에 울면서 기도하게 하셨고 개척 목장에 더욱 확신하게 하셨습니다. 기도 중 야곱에게 많은 아들들을 안겨주면 야곱이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까 사랑해 주지 않을까 하며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레아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한 목사님께서 하셨던 ‘내가 살기 위해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라고 말씀하신 게 떠 올랐습니다. 저는 제가 살기 위해 사랑하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목자로 헌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전능하십니다. 제가 목자로 헌신하건 아니하건 하나님께서는 일하시고 계시고 모든 일을 능히 푸실 수 있으십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영혼 구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의 두 번째 파트에 말씀하신 추수할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신 건 주님께서 추수를 혼자서 다 하실 수 없어서 일꾼이 적다고 하시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주님이 허락하신 자유의 의지로 결정하여 주님의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기에 하신 말씀임을 압니다. 이 추수해야 할 믿지 않는 자들이 넘쳐나는 만큼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말은 이렇게 장대하고 큰일을 해낼 것처럼 말씀을 드렸지만, 목자로 재헌신하고 같이 시작한 목원이 다른 교회로 가야겠다 해서 제대로 된 목장 모임이 끊긴지 반년이 좀 더 넘어가다 최근에 돼서야 겨우겨우 든든한 동반자이자 사랑하는 아내인 윤정자매 덕분에 다른 교회에서도 딱히 정착을 못 하고 있던 그 목원을 다시 데려올 수 있었고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형제 한 명이 더 추가되어 4명이서 이제 제법 목장다운 모임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능력이 부족한 건 당연하지만, 목자의 자리는 내 능력만이 있어서 해나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추수를 잘하는 농부라도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작물에 싹이 안 트고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추수를 못 하는 것처럼, 또 여러 인력이 없다면 그 추수하는 기간이 너무 고된 것처럼, 목자들이 하는 것은 사실 주님이 하신 모든 일을 바라보고 목원들과 같이 열매를 추수하고 즐기는 것뿐일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자리를 지킨 목자, 목원들을 칭찬해 주실 것이고 목장을 통해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것보다 의미있고 중요한 것이 없음을 알기에 목자들은 그 자리로 나아갑니다. 목자에 마음이 있으신 분이 계신다면 힘들어 보이는 것에 집중해서 두려움과 염려 마시고 그 뒤에 있는 더 큰 영광과 기쁨에 집중하셔서 결단하시기 강권합니다. 또한 추수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한 것처럼 목원 여러분 없이는 목장이 돌아갈 수 없음을 목자 목원 모두가 인지해야 하는 바입니다. 제가 목원이 없어서 제대로 된 목장 모임을 하지 못한 것처럼, 목원들 특히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분들이 목장 모임의 꽃이고 중심임을 모두가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수하는 농부는 목자만이 아닌 주님을 영접한 모두임을 인지해 목자는 목자의 일을, 목원은 또 목원의 일을 최선을 다해 함께 꾸려가고 하나님께서 그런 워터루 제일교회 성도님들 한분 한분을 통하여 영혼 구원의 기적을 이루실 그날을 고대합니다.
아무 능력 없는 저의 등불이 되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인간의 모든 원죄를 십자가에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이 모든 성경의 이치를 알게 해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며 저의 고백을 마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