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서 이어집니다)
함께 모일 수 없는 이 시간 가운데 그래도 여전히 열정이 넘쳤던 작년 4월, 다니엘 금식 기간인 21일 동안 목장에서 요한복음을 한 장씩 읽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희 목장은 VIP 2명, 파송목원 1명 그리고 저 이렇게 비신자 반, 기신자 반인 목장이었는데요, 그런 VIP 목원들에게 그런 제안을 감히 할 수 있었던 건 물불 안 가리던 그 당시에 열정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무모한 목자의 열정에 무슨 말인지도 하나도 모르는 어려운 성경 말씀이지만, 한장 한장 매일 매일 올려준 것을 읽고 느낀 점을 나눠줬던 VIP 친구들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기특하고 고맙기만 합니다. 그 시간은 매일 매일 한 장씩 요한복음을 목장 카톡방에 올려주고 묵상도 함께 올려주며 다니엘 금식 기간을 목원들과 함께 지키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통독이었습니다.
어렵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목자 언니가 읽어보라고 하니 읽어보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질문하기도 했던, 성경을 처음 읽어본 VIP부터, 말씀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지금도 그때를 좋은 추억으로 새기고 있는 목원들이 있었기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봤을 때 너무나 감사하고 유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반면에 저에게는 그 시간이 너무나 전쟁 같은 시간이었는데요, 전쟁 같았던 만큼 영적인 유익함이 넘쳤던 시간이었습니다. 21일은 어찌나 긴지, 또 요한복음에서 한 장 한 장이 왜 그렇게 긴 건지, 말씀을 한장 한장 올릴 때마다 VIP들의 눈치가 너무나 많이 보였습니다. 물불 안 가리던 열정은 점점 주눅으로 바뀌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습니다. 목원들이 카톡을 하루 넘게 읽지 않을 때, 혹시나 내가 너무 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나, 이러다가 VIP들이 뛰쳐나가면 어떡하나, 함께 요한복음을 읽자고 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인가, 더 기다려 줄 걸 그랬나, 안 한 것보다 못한 것이 되면 어쩌나, 수많은 두려운 생각 가운데 21일을 버틴 것 같습니다. 그 두려움 때문인지 이들이 정말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고, 하나님을 믿었으면 좋겠고, 하나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깨닫는 영이 이들에게 임했으면 좋겠고, 이들과 함께 자유롭고 풍성하게 말씀을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주눅이 들 때마다 가득가득 주셔서 하나님 앞에 더욱 엎드리게 되고, 눈물로 목원들을 위해 기도하며, 더욱 그 영혼들을 위한 간절함이 생기게 됐던 계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목자로 세워주시기 위한 첫 과제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여느 날과 같이 온라인 목장 모임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을 때, 저희 아버지가 거실 티비로 유튜브에서 설교를 하나 듣고 계셨습니다. 저는 물을 마시러 내려온 길이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아빠가 듣고 계시던 설교 중 목사님의 한마디가 귓가에 들려왔는데요, 그 한마디가 참 마음 가운데 확 꽂히면서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놀랄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교회 다녀? 그 사람이 예배드려? 라고 말하며 그사람이 정말 오늘 주일에 하나님 앞에 그렇게 예배드린다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웃을 사람도 있고 깔깔 될 사람도 있고 놀랄 사람도 있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성령님이 아니시면 이렇게 예배드리러 나올 수도 없다니까요”라는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지나가면서 듣고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목장의 VIP들도 지금 이렇게 목장 모임을 나오고 교회 안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기적인데, 그 친구들이 모임을 지키고 나오고 있다니 성령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시는구나. 우리 VIP들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진정한 예배자로 거듭나 성령으로 놀램을 주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팬데믹의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습니다. 목원들이 한국에 하나씩 돌아가니,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의 일상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캐나다와 한국의 시차도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VIP인 목원들은 점점 모임에 빠지기 시작했고, 캐나다에 있을 때보다 전원 출석이 어려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한번 두번 빠지다 보면 영원히 빠지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도 생기고, 매주 기도 제목이 목원들이 모두 모임에 참석할 수 있도록이었습니다. 함께 음식도 먹을 수 없고, 함께 만나 놀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희가 딱 친해지려고 할 때 헤어진 거라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어요. 그런 조금 서먹한 사이로 쳇바퀴 굴러가는 일상을 매주 나누는 것으로 그치는 모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도 점점 온라인 목장 모임의 효율이 없어짐을 느끼고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노력해서 참석하려는 VIP들을 보면, “이렇게 재미없는 모임에 시간을 써가며 참석을 하려고 할까?” “왜 나올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고, 감사했기도 했습니다.
시간을 여러 번 바꿔보기도 하고, 카톡으로 목장 모임을 대체 해보기도 하고, 여러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1년 내내 항상 버릇처럼 말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가끔 말하곤 하는데요,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마음처럼 VIP들이 너무 성장하지 않고, 오히려 퇴행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며 내가 잘 못 해서 그런 것 같고, 모든 게 다 내 탓 같았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이 현실 자체가 저를 너무 괴롭게 했습니다.
제가 가진 성격상 저는 이왕 시작한 거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저 자신에게 주곤 합니다. 그리고 제가 세운 기준에 미치지 못하였을 때 거기서 오는 패배감에 정말 괴로워하곤 합니다. 누군가 잘하고 있으면 잘하고 있다, 못하고 있으면 못하고 있다,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목자의 자질에 의심을 품은 채, 맡겨진 자리를 지키다 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저 견디고 있었습니다. 목자들의 부재는 많이 봐왔는데, 목원들의 부재로 목자 혼자만 남은 이런 상황은 또 처음이라, 비대면에서 대면 목장 모임으로 전환하는 목장들을 보고 부럽기도, 예배 끝나고 목장끼리 교제하는 목장들을 보면 외롭기도 한 시간을 지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 가운데 저는 목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있고요, 목원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