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중에도 감사합니다

간단하리라고 생각했던 치핵 제거 수술 후 문제가 생겨서 잡아놓았던 귀국 날짜를 훌쩍 넘겨 아직도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병원에서의 일상의 대부분은 침대에 누워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무료함이지만, 때로는 과다출혈로 위급하여서 한 밤중에 더 큰 병원으로 이송돼 수혈받기도 했습니다. 저의 소식을 들은 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병원에 거품 물고 난리를 한번 피워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손해배상 청구를 하라느니 고소를 해야 한다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의료진은 감동할 만큼 최선을 다해 돌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술 부위가 한번 터지면 어쩌다 재수 없어서 또는 관리를 잘못해서 터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꿰맨 자리를 다섯 번이나 다시 꿰매기를 반복하는 것은 흔치 않을 뿐만 아니라 로또를 맞을 확률 보다 적을 정도로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에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번째 터진 후 재수술 집도한 의사가 “또 터질 일은 없을 테니 만약에 또 터지면 로또를 사라”고 했습니다 ㅎㅎ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 여기 내 상황에 개입하심을 확신하고 나니 이곳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며 임재의 시간이기에 매우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육체의 고통이 상상을 초월하기도 하지만 현재 상황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감사로 인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걸어가신 고난의 길과 십자가 위에서 살을 찢기며 피 흘려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불평과 짜증이 아니라 감사하다는 말이 내 입술에서 계속 터져 나오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성령님의 강권하심이 계속 함께하기 때문에 감사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입원 환자로서 병원에 누워 약한 육체와 상처를 고통스러움과 함께 기도하고 있는데,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은 내 생각을 넘어서 역사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금식할 때 일어나는 현상과 같이 육체가 힘이 없고 연약하게 되니 육체의 강한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힘을 잃고, 대신 영이 맑아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내 영이 향하자 평소에 거듭 행하던 불순종의 죄와 내면 깊이 숨겨져 있던 죄까지 탈탈 털어서 회개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내게 주신 사역이 얼마나 존귀하며 중요한지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처가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복음의 핵심을 전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섯 번째 수술실에서 나와서는 축 늘어진 몸으로 처남의 손을 잡고 신앙의 길에 든든히 서도록 유언처럼 당부했습니다. 저의 아픈 소식을 듣고 기도를 안 하던 사람들까지도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인생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 분들도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상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한두가지 감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수술을 위해 척추 마취를 받아야 했습니다. 마취가 완전히 풀릴 때까지의 6시간 동안은 하반신을 꼼짝할 수 없고 일어나는 것은 물론 옆으로 돌아눕거나 다리를 굽혀 세우거나 베개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자세를 하고 반듯하게 누워 있을 때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아팠습니다.

마취가 풀린 후에도 올바른 자세를 잡지 않으면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이때 무릎을 세울 수 있었으면.. 약간이라도 옆으로 돌아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생각했습니다. 허리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했던 것은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약간 허리 근육이 당겨지는데 잠깐이지만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에 매우 행복했습니다. 잠을 잘 때 뒤척거리며 잘 수 있는 것이 축복이며 감사한 것임을 처음 알았습니다.

입원하면 약물을 주입하기 위한 호스를 답니다. 검사를 하거나 위험할수록 더 많이 달았는데 저는 8개까지 달아 보았습니다. 손등과 팔에 꽃아 둔 이 호스들 때문에 머리를 감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세수조차 한 손으로 겨우 했는데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두 손으로 세수하고 머리 감을 수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편리함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배려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평소에는 알지 못했다가 고통의 자리에 서게 되니 더욱 잘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별 생각 없이 흘러갈 수 있는 일상에서 침대 위에 덩그러니 눕혀 있게 되자 삶의 주관자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고난의 자리에 들고 보니 시끄러운 세상의 아우성과 내 삶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유혹에서 영적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 되심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통 가운데 내게 쏟아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다가와서 병상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게 합니다.

내 하나님, 오직 당신께서 영광 받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