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런 통증으로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상상과 함께 해봅니다. 그 중에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현재 상황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이라면.. 이 시험을 인내하며 잘 이겨냈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시험을 잘 치렀다고 칭찬하시면서 상을 주신다면, 어떤 상을 달라고 해야 할까….?’ 예를 들면, 소원을 기록할 수 있는 백지 수표를 주시면서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적어 넣으라”라고 하신다면 나는 무슨 소원을 적어 넣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교회당 건물을 달라고 하면 우리 교회가 마음껏 사용하고 교육하며 교제할 수 있겠지? 워터루 지역에 영혼 구원하고 제자 삼는 교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100개의 목장을 달라고 할까? 목회자는 말씀을 잘 전해야 하는데, 뛰어난 언어 능력과 함께 설교를 탁월하게 할 수 있는 은사가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손을 얹고 안수하여 기도하면 불치병도 낫고 기적이 일어나는 영적 능력이 있으면 전도를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카리스마는 어떨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시 고통을 잊고 설렘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상상 속에서 소원 백지 수표에 다음과 같이 적어 넣었습니다.
“변함 없이 신실한 목회자가 되게 해주세요.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목회자, 내게 맡겨주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온 마음 다해 사랑하는 목회자로 끝까지 살게 해주세요”.
몇 번을 생각해보았지만 큰 교회당이나, 높은 명성, 큰 능력보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고 싶은 소원’을 적어 넣기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큐티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의 삶을 보면서 더욱 그렇게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왕이 되어 명예도 얻었고 많은 재산도 얻었고 이스라엘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스리는 힘도 가지게 되었지만, 점점 자신의 자존심과 명예와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하나님을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자신이 주인 된 삶을 사는 사람이 됐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 그것을 지키려다가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떠나는 어리석고 안타까운 상황에 처했던 것을 봅니다.
세상에서 이름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능력과 힘을 가졌을지라도 이것들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공동체에 고통을 주며 근심이 된다면, 오히려 가지지 않는 것이 내게는 더 유익하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한 장 밖에 쓸 수 없는 소원 백지수표를, 당장 필요한 어떤 것들보다 ‘변함없이 신실한 목회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으로 써 버릴 수 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고통을 겪으며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인 상황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살 수밖에 없는 보잘것없고 연약한 내 존재를 실제로 마주했기 때문일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나의 상황은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고통의 시간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은혜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고통과 감격의 눈물이 함께 공존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병으로부터의 치유와 함께 고난의 공부를 잘 배울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