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단기선교에서 생각한 8.15 해방

약 15년 전 사스카취완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을 당시 First Nation이라고 부르는 300명 정도 캐나다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에 단기선교를 간 적이 있습니다. 사스카취완의 주도시인 리자이나에 있는 친구 학생의 교회에서 북쪽으로 약 5시간 거리의 원주민 마을이었습니다. 교회 성도와 친분이 있는 마을이어서 벌써 몇 년 동안 단기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와 다른 한 사람(원주민출신 경찰) 빼고 단기선교 대원 모두가 백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방문이었던 것과 자신들과 비슷하게 생긴 생김새 때문인지 아이들이 쉽게 가까이 오고 주변에 몰려들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경학교를 열었습니다. 성경학교에 참여하러 온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게 보였습니다. 대부분 옷 차림새는 여느 시골 아이들처럼 보였고 그들의 얼굴은 수줍은 듯 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모습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지도를 곧잘 따르는 듯 했습니다. 그 다음 날인가 차를 타고 마을을 돌 때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 집집마다 창문에 유리창이 없고 큰 비니어 합판(Sheathing panel)을 덧대 놓았던 것입니다. 왜 마을 집집마다 창문에다 합판을 덧대어 놓았는지 물어보자 함께 동행한 한 사람이 설명하기를 사람들이 유리 창문을 돌을 던져 깨뜨리기 때문에 합판을 설치했다는 것입니다.

함께 참여한 단기선교 대원 중의 한 사람으로부터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성경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보여도 저마다 한 두 가지 슬픈 가족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이거나 형제들 중에는 마약과 관련해 죽은 자들이 많고 가족에게서부터 육체적인 몹쓸 짓을 당한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그런 일들이 타지에서부터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안에 있는 원주민들 간에 일어나는 사건이었습니다.

단기 선교에 참여한 옆에 앉은 백인 중의 한 사람과 오랜 시간 차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 신앙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생각도 좀 깊이 나누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을 Metis로 소개했습니다. 유럽에서 온 백인과 인디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부르는 용어임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어려운 삶을 살았는데, Metis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매우 싫어했었습니다. 특히 힘든 것은 욱하는 성질로서 단순히 사람과 다투는 정도를 넘어 감옥에 갈 정도였고 마약으로 찌든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자신 만이 아니라 형제들 대부분이 비슷한 삶을 살았는데 자신은 예수님을 만나 이제 괜찮은 삶을 살게 됐다고 간증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욱하는 성질을 가족 모두 가지고 있고 서로 고통스럽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자기 자신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 일본제국에 의해 침략당하고 나라를 뺏겨본 역사를 가진 한국사람으로서 그 사람에게 있는 욱하는 화가 쉽게 이해가 됐습니다. 그래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서 가족에게 자리 잡았는지를 짧은 영어를 가지고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정말 그런 것 같다면서 아직 그것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이제 이해가 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너는 그것을 알 수 있었냐고 해서 우리 한국사람들도 일본제국에 의해 36년 동안이나 침략당해 고통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

우리 나라에 8.15 해방이 없었다면 캐나다 원주민들처럼 우울함과 분노가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고 가족에게 화를 쏟아 부으며 서로를 괴롭게 하고 있을 가능성이 짙습니다. 매해 8월 15일이 되면 원주민 단기 선교 때를 돌이켜 보면서 원주민 선교기간 내내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를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에 대해 감격하며 감사했던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