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두 개쯤 가지고 있는 깊은 상처에는 남모르는 스토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친구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상처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남기고, 억울한 일을 당해서 만들어진 상처는 분노와 복수심을 남기게 됩니다. 동업하다가 배신을 당했을 때에는 물질적인 손해를 남기고 심지어 가족들에게 큰 고통까지 줍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의 손과 발의 못 자국에는 배신과 분노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원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창에 찔린 옆구리 상처는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복된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온 우주에 나 혼자 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희생적인 사랑 이야기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수많은 상처 속에 아름답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원하거나 예수님을 닮기 원한다면 우리 인생에서 만들어진 흉한 상처에 반드시 새겨야 할 흔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처를 싸맨 붕대를 풀고 아름다운 장미꽃 문신을 할 것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려는 사랑의 흔적, 부러진 관계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흔적, 생명을 살리려는 섬김의 흔적을 새겨 놓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상처에 대해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상처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쁜 소식을 전하다가 오해를 받기도 하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배가 파선되고 사람들에게 공격을 당했으며 죄수의 몸이 되었고 몸은 병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고난의 행진을 통해 예수님의 섬김과 사랑 이야기를 자기 상처에 새겨 넣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목회 현장에서 겪은 과거의 상처나 현재의 상처가 보기 흉한 상처 자국으로 남겨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상처의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흔적이 남도록 복음 전파에 집중하며 성숙을 향한 몸부림을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보다 더 아픈 상처는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상처를 입은 경험이 고통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치유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주 목장에서 영혼 구원을 위해 섬기면서 갖게 된 상처들, 사역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다가 갖게 된 상처들, 가정에서 자녀들을 양육하다가 갖게 된 상처들, 부부생활 속에서 갖게 된 상처들, 일반목회를 계속했다면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주님의 소원을 붙잡고 가정교회 목회로 전환하거나 개척하면서 갖게 된 상처들, 이 모든 상처들은 어느새 사명이 되어 고통당한 자들을 위로하는 놀라운 간증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는 상처를 만들지 말고 아름다운 주님의 꿈을 새겨야 합니다. 우리의 꿈이 거창하지 않더라도 그 꿈 마지막에 예수님이 계시는 그림을 새겨야 합니다. 교회 교우들의 상처 자국 위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지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어느 찬양 가사처럼 우리가 걸어간 끝에 예수님이 서 계신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한 목회자와 선교사요, 성공한 인생을 산 사역자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사람의 상처로 인해 만들어진 눈물을 닦아 주시고,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을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교회 목회하다가 목회 현장이나 선교지에서 갖게 되는 우리의 상처는 이제 더 이상 상처로 남겨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상처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더 친밀하게 만난 예수님의 흔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당하는 이 시대에 사명이 되어 고통당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축복의 나팔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매월 모이는 목회자 지역 모임은 목회 현장에서 갖게 된 상처에 예수의 흔적을 새겨 넣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헌신하다 수많은 간증을 가지고 있는 지역 목자들에게 새겨진 예수의 흔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교회 목회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변수가 목회 현장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갑자기 맞이한 수많은 목회적 어려움 속에서 주님은 감당할 힘을 주시던지, 피할 길을 열어 주시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혼자 고민하고 묵상 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고민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미 그 고민을 경험했고 해답을 찾은 목회와 선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동역할 때 더 큰 능력이 나타납니다. 손에 손잡고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의 고백처럼 ‘선한 능력으로’ 일어나서 절망스런 목회 현장과 선교지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상처에 새겨진 흔적을 목회자 지역 모임 때마다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위기의 시대에 주님의 능력으로 다 함께 고난을 이겨내고 영혼 구원하고 제자 삼는 건강한 신약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우리 모두 쓰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