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아이 셋을 데리고 기러기생활 중인 기러기엄마 이상미라고 합니다. 한국에서의 저의 삶은 평범하였습니다. 매일 똑같았지요.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며 남편 퇴근하기만을 바라는 남편바라기였습니다. 큰아이를 낳고 둘째를 가지기 위해 교회를 잠시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초등학교 때 아주 잠깐 다녔던 이후 성인이 돼서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 기억하는 교회는 이상한 곳 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자기 집으로 저랑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가서 한 명, 한 명씩 우리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어찌나 우리의 발을 정성스럽게 닦아 주셨는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저는 그저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것이 저의 교회에 대한 첫인상 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원하던 둘째가 생기지 않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믿음도 없던 제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요. 하지만3년동안둘째 소식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 나에게는 자식이 한 명뿐 인가 보다’ 하며 운명론을 운운하였고, 교회도 자연스레 멀어졌습니다. 그 이후 생각지도 않던 쌍둥이들이 찾아왔으며 저는 갑자기 늘어난 식구들에 하루 하루 정신 없이 살았습니다. 아이들을 낳기 일주일전엔 무릎 뼈 두 곳이 부러졌고 몸 조리는커녕 너무나 힘든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바쁘고 고단해지다 보니 내 삶은 만족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2017년 아이들에게 다른 교육환경을 보여주겠다는 명분이지만, 사실은 한국에서의 삶이 힘들고 지친 나머지 일탈을 꿈꾸며 다른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아이 셋을 데리고 이곳 캐나다에 정착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는 지금보다 제가 좀더 어렸었나 봅니다. 그러한 꿈을 꾸다니요. 아이 셋을 데리고 코네스도가칼리지에서의 학업과 육아를 병행 하려고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육아에 지쳐 어떤 것이든 탈출구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캐나다였고 처음 몇 달은 학교 적응하느라 저랑 큰아이는 하루하루 바쁘게 보냈습니다.
제가 한 학기를 마칠 무렵 저에게도 아이에게도 그 동안 쌓였었던 무시하고 있었던 문제들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당하고 있었으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출해야 하는 저의 과제물에 치여 아이들을 제때 돌보지 못했던 것이 드디어 문제가 돼서 나타나고 만 것 입니다. 몇 번 저에게 말을 하였지만 전 주의 깊게 듣지 않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저의 욕심만을 위해 캐나다에 온 것 이기에 남편에게도 사실대로 말을 할 수 없었으며, 아이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 것도, 아빠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도 무엇 하나 제가 제대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의 욕심이 아이를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저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방학만 기다리며 말이죠. 그러다가 카페를 통해 알게 된 지인분과 통화를 하며 조언을 얻었고 그분이 제일 교회 야외예배에 저희 식구를 초대해주셨습니다. 그 지인 분은 얼마 전에 한국으로 귀국하신 김수현 자매이십니다. 부담 없이 오라는 말씀에 아이 기분도 전환 시켜주고 싶었고 집과 학교뿐 왕래가 없던 저로서는 누구든지 붙들고 저의 상황을 얘기 하며 낯선 땅 캐나다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예배는 워터루 공원에서 야외예배로 진행 되었는데 저는 너무나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분들이 친절하게 저를 맞이 하여 주셨으며 큰아이도 모처럼 밝은 모습을 띠었습니다. 그 날 이후 아이는 교회 얘기를 자주하였습니다.
아이가 너무나 행복한 모습을 보였기에 망설임 없이 교회에 다녀보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캐나다 생활은 한국생활보다 더하면 더했지 제 삶은 여전히 바빴기에 일요일 하루를 교회에 얽매여 보낸다는 것은 저에게는 큰 결심이 아니고서는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엄마이기에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교회를 다니기를 마음먹었습니다.
교회에 와서는 새 신자 교육과, 예수 소개모임을 들었습니다. 예수소개 모임 때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시는 기도를 한 후, 목사님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 상미자매 마음속에도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무언가 따뜻한 전율 같은 것을 느끼긴 하였지만 저는 그때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의 뜻을. 머리로는 더욱 더 그 말씀의 뜻을 알아 채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습니다. 저에게 일년간 교회는 일요일이라서, 교회 가는 날이기에 그런 의무감의 교회였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기도하는 방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였으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진정한 의미도 몰랐습니다. 중간에 생명의 삶 수업을6주간 듣긴 하였지만 그것 또한 무슨 말인지 너무 어려웠으며 정말 딴 세상 얘기 같았습니다. 성경책이 너무나 낯설었고 목사님 말씀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냥 자연스럽게 ‘아!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나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하나님의 존재를 자연스레 믿게 된 것 입니다.
그날 이후 교회 가는 발걸음이 달라졌습니다. 그 동안 의무감에 다녔던 교회가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가는 날로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님의 희생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가 제가 두 번째 생명의 삶 수업을 시작한 이후였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수업하고는 많이 달랐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마음가짐이 조금씩 변화가 생겨서 그랬을까요? 목사님 말씀과 성경책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 왔습니다. 그 동안 제가 알고 있던 교회, 하나님, 예수님, 성경책 그 모든 것들이 완전 다른 것 이었습니다. 제가 몰랐던 것들을 생명의 삶 수업을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알아갈 때 아 정말 내 마음속에도 하나님이 아주 작지만 자리잡고 계시는 구나 하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처음 예수소개모임 때 느꼈던 따뜻하게 느껴오던 전율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 입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첫 예수 소개 모임 때 제 마음속에 이미 자리를 잡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죠. 비로소 삶 수업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알게 되어 갔으며 작지만 저의 믿음도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육성을 들은 것도 아니고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바를 기도로 응답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고 예수님의 삶처럼 살아 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그 믿음과 의지는 나이아가라 수련회 때 더 굳건해졌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졌으며 하나님에 대한 저의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았고 풍성한 믿음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을까요? 저에게 닥쳐올 시험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 주위에 믿음이 강하신 분들로 저를 채워 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힘들고 흔들릴 때마다 그분들께서는 저를 붙잡아 주셨으며 저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수련회를 다녀온 이후 무엇인가 교회가 불편해졌으며 믿음이 흔들렸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가면 편해졌던 제 마음이 불편해졌고 누군가를 의식하였으며 기도 또한 순수함이 없이 거짓으로 임하는 저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행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제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회피할 생각뿐이었습니다 아직 나의 신앙심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라며 저의 행동을 스스로 합리화 시켰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아닌 오로지 제 생각으로만 해결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도 너무나 제 얘기 같아서 더욱더 교회 가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를 잠시 쉬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멀어지니 아이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제 삶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더군요. 예수님의 삶을 표방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지가 얼마 전인데 하루 종일 제 맘대로 살며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한 주 두주 삼 주를 보내면서 ‘아 내 생각이 정말 오만한 것 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겠구나 생각하니 정말로 끔찍하였습니다. 내가 너무나 큰 착오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삼 주를 보내고 있는데 유양근 목자님, 이해영 자매님, 박지영 자매님 박선혜 자매님께서 저에게 용기를 주셨으며 끝까지 손잡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용기 내어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캐나다생활의 첫 번째 고비로 저는 워터루 제일 장로교회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며, 두 번째 고비로 하나님을 향한 저의 믿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주관해 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믿음이 없던 저를 하나님께서는 만나주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제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도 많은 변화를 주셨습니다. 작은 것 하나부터 모든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너그러운 마음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존중하며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지요. 전에는 ‘왜 우리 아이는 이럴까? 다른 아이들은 안 그런다는데’ 하며 비교하기 바빴습니다. 아직 모든 것을 다 내려놓지는 못하였지만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위함이고 어떻게 대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 주위에는 믿음이 강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삶을 보면서 마치 저러한 삶이 예수님의 삶이지 않았을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유양근 목자님의 삶을 보고 느끼면서 하나님께 한발 한발 의심 없이 다가갈 수 있었으며 믿음이 자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13장1절~20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겨 주시는 말씀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제가 이상하게 느꼈던 초등학교 때 교회 선생님께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우리의 발을 씻겨 주셨을 겁니다. 곧 십자가를 지실 거라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 주시면서 제자들의 죄를 사해주셨던 그 마음으로요. 저의 발은 곧 다시 더러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전 이제 그 때마다 그 상황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며 믿음으로 죄를 사할 것이고, 또한 이웃의 발도 먼저 나서서 씻겨 줄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겠습니다. 저를 이곳 먼 캐나다에 오게 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압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게 하였음에 감사 드립니다.
– 이상미 자매 / 칸짜나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