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과 함께 16년 전에 캐나다로 가서 한인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9년 가을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암이라는 자체만으로 두려웠지만 수술로 간단히 절개하면 된다는 의사의 말에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CT와 MRI 촬영 결과, 암이 이미 간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그것도 암세포가 좌우 간에 퍼져있고, 전이가 대동맥 림프절까지 멀리 퍼져 있어 수술할 수 없고 항암으로 2~3년 정도 살 수 있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으니 체중은 계속 감소했고 마음은 절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현실을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4명의 자녀를 생각하면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고, 교회에 염려를 끼칠까 하여 교회사역을 내려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수술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은 기도와 고민 끝에 한국행을 결정하였습니다. 살림하는 나의 처지에선 한국에 가면 감당해야 할 병원비와 체류비가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문제로 내가 캐나다 국적취득이 불가피했기에 한국에 와도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더욱 부담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바로 비행기 표를 예약했습니다. 그렇게 나의 신촌 세브란스에서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공항에서 병원으로 바로 입원을 하고 각종 검사 후에 바로 항암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희망과 절망이 되 섞인 시간이었습니다. 항암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3일간 약을 투여하는 항암을 2주에 한 번씩 감당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 항암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밥을 먹기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감정은 계속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했습니다. 2차 항암 후에 남편은 목회 때문에 캐나다로 돌아갔습니다. 추운 겨울에 남편 없는 신촌은 너무도 외롭고 무서웠습니다. 4차 항암 이후부터 얼굴에 진물이 나고 손발이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항암 환자들이 겪는 모든 부작용이 내게도 나타난 것입니다. 수없이 울면서 지냈지만 영상으로 만나는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었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외로워서 매일 신촌 거리를 걷는 사이 다리에 근력이 생겼고, 덩그렇게 남겨진 원룸에서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매일 같이 드린 눈물의 기도가 내 영혼을 강건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 예수님이 직접 나를 안아 주셨고, 나를 향해 “딸아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주치의께서 수술할 수 없고 치료비가 너무 많이 드니 캐나다에 돌아가셔서 항암을 계속하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 나로서는 붙들고 있던 끈이 끊어진 듯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눈물이 앞으로 가려 길을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와 아이들, 남편,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친정 식구들, 교회 가족들, 너무도 걸리는 사람들이 많고 미안했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 때쯤 소망의 메시지가 들려왔습니다. 주치의께서 4차 항암 후 찍은 CT 결과, 간과 대장에 있는 암세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항암 효과가 100명 중 5명에 해당할 정도로 좋다고 하셨습니다. 희망을 끈을 놓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항암은 계속되었고 8차를 마친 후 CT와 MRI를 다시 찍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명의 의사 선생님들이 협진하는 자리에 참여했습니다. 수술 의사께서 암세포가 많이 줄어들어 완치를 위한 수술을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수술은 간과 대장을 많이 절제하고 대동맥림프절도 많이 긁어내는 수술로 10시간에 걸쳐서 했지만 수술결과는 계획대로 잘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퇴원을 하루 앞두고 병상에서 이 글을 적으면서 지난 5개월간의 투병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물론 앞으로 또 항암과 회복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머리카락까지 헤아리시는 자상하신 하나님의 세밀한 돌보심과 인도하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계획과는 다르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은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일상 속에 숨겨 놓은 수많은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한 테이블에서 식하사는 기적, 마음껏 먹고, 대소변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기적, 자연의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기적, 무엇보다 감사한 발견은 날 위해 묵묵히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믿음에 관해 이야기해 왔지만 내가 과연 믿음의 내공을 가지고 있었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너무도 상투적으로 들렸던 말씀이 이젠 깊은 공감으로 다가옵니다. 지난 5개월간의 투병을 통해 살아계신 예수님을 더 친밀하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뒤돌아보며 한없이 울고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어디까지 연단시키실지 알 수 없지만 죽을 수밖에 없고 무지했던 나를 구원해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아픔 가운데 참 많은 분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보게 해주셨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어수선해도 주님 만드신 이 땅은 분명 축복의 땅이요 작은 천국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암 병동에서 무수한 암 환자들을 대하면서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어 긍휼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음도 고난이 내게 주신 작은 선물입니다. 이제는 육체 때문에 아파하지 않고, 예수님의 영혼 때문에 아파하고 싶습니다. 가족과 이웃과 자연을 더 사랑하고 아낌없이 나누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