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트 목장 선교사의 편지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워터루제일교회 성도님 여러분, 뭐라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참으로 슬픈 한 해였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일깨워주는 시간이었고, 평범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사회의 부족함을 통해 더욱 깊이 절감하는 그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 예수님께서 저희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 때로는 이 말씀을 믿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죄 많고 약한 육신을 가진 제가 빛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하는(고후 5:17) 성경의 말씀에 의지하며 제 머리가 아닌 믿음을 따라가기로 날마다 결심해 봅니다.

하노이 온 지 2년 어느덧 이곳 베트남에 정착한 지 딱 2년이 되었습니다. 재작년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는 오토바이 소음과 매캐한 공기, 그리고 길거리에 넘쳐나는 쓰레기를 보고 문화 충격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체감으로는 4~5년은 된 것 같네요. 힘든 일도 많았지만, 감사한 것은 그 힘든 일들이 오히려 베트남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시험들과 묵묵히 순종하는 초대를 통해 부족한 저희 부부가 이 땅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음을 깊이 느낍니다. 이제는 베트남어도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여 길거리 간판들의 의미를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현지인들과 간단한 의사소통도 가능해졌습니다. 그 덕분에 적응 과정에서 겪었던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든 것을 느낍니다. 귀가 들리지 않아도 6개의 성조를 가진 새로운 언어를 계속 잘 배울 수 있게 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난 여름에 <교회 세대 충격> (가제) 책 원고를 탈고했다고 소식을 알렸었습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책이 출간되어야 했지만, 출판사 대표님께서 저에게 미안하다며 개인적 사정으로 내년 4월쯤 출간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책 출간이 1년 넘게나 미뤄져서 개인적으로는 많이 실망했지만, 흔쾌히 승낙하며 완벽한 타이밍은 예수님께 달려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출판 그 자체가 아니라, 좋은 시기에 출간되어 단 한 분에게라도 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기를 통해 기다림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묵상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기다림은 침묵이며, 자기 자신을 부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과거에는 제 마음대로 살아가던 인생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삶은 타인을 위한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처럼 기다림과 침묵은 나 자신만을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저명한 뇌 과학자 박문호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우리의 쾌감 중추(pleasure centre)를 자극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불리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비밀을 타인에게 털어놓는 이유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욕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욕구는 그리스도의 몸을 분열시키는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데 몰두하면 결국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되거나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을 섬기라고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절제하는 침묵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한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방에게 더 인정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딸/아들아” 하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인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침묵하며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을 통해 침묵하는 법을 배우게 됨이 참 감사합니다.

저희 부부는 여전히 현지인 신자 청년 한 명과 매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청년은 능력이 많이 부족한 친구입니다. 같은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무시받고, 심지어 친척과 가족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사실, 기도하던 중 저희 부부가 이 청년을 고용하라는 강한 마음을 받았고, 지금까지 6개월 넘게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에 있을 때도 제가 고용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능력 부족”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 부적응자이자 약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아름다워 보입니다. 약자를 위한 비즈니스, 참 멋져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 매일매일 속 터지는 일상의 연속입니다. 선진국이든 제3세계든, 어디에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능력만으로 평가되는 이 세상의 비즈니스 법칙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봅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은혜를 이야기하면서도 상대를 능력으로 판단하려는 제 약함을 느낍니다. 은혜란 본래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진 것임에도 말이죠. 그저 자매이자 형제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동시에, 무조건 잘해줘서 우습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터라는 규칙 속에서 공정성을 강조하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 청년이 자신의 삼촌과 함께 저희 집을 방문하여 저희 부부에게 조그만 선물과 함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울면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한 끝이 시큰해지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내년에도 이 청년 때문에 답답한 일이 많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저희를 먼저 사랑해 주셨음을 매일 기억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요일 4:19). 저희 부부는 기다리고 침묵하는 동시에, 주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일에는 열심히 임하려고 합니다. 많은 것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이 오해를 살 수 있지만, 그것도 침묵의 삶에서 필연적인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침묵하며 행동하는 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 좌파와 우파를 모두 초월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정치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애매한 정치적 입장이 모든 자매와 형제를 품을 수 있는 것을 여러 번 확인했기에, 그리스도의 몸의 연합을 위해 앞에서는 더욱 침묵하고, 뒤에서는 행동하겠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 13년이나 노예 생활을 했던 요셉을 떠올립니다. 그는 10년 넘게 보이는 열매를 맺을 기회가 없었고, 마지막에는 감옥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이집트를 경영하는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힘든 시기에도 도리어 예수님을 굳건히 바라보며 확실한 소망을 붙듭니다. 성도 여러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랑하는 김기욱 김수영 부부 올림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