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0일부터 Bible GPS를 15명의 형제자매님들이 자원하여 매일의 차례를 따라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각각 다섯 명씩 세 팀을 나누어 그날의 성경을 듣고 읽으며 그 내용을 카톡을 통해 나눔을 합니다. 본인이 말씀을 들으며 깨달은 것을 카톡을 통해 다른 지체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본인의 나눔이 타인을 유익케 하는 섬김이 되다 보니 말씀을 대충 듣지 않고 집중하게 되고, 나눔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더욱 풍성해지는 유익을 맛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카톡 방에서 나눈 것 중에 몇 가지를 전체 성도들에게 소개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유익한 글 되기를 바랍니다.
김성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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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차 입니다.
예전에 이 본문을 읽었을 때는, 왜 굳이 이런 사소한 장막 짓는 것부터 옷차림까지 다 하나님께서 명령해야 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저에게 오늘 다가온 이유는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으러 가 있는 그 시간 동안을 못 참은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을 만들 것을 아시고, 하나님을 섬길 때 어느 부분은 어떻게 정갈하게 또 성스럽게 지어야 하는지 무슨 의미가 있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다 가르쳐 주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그저 화려하고 제일 좋은 것만 갖다 드리면 다 된 줄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또 한편으론 개인 각각의 장점들을 꼽으며 직업 및 맡을 일을 정해 주시는 걸 보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렇게 쉽게 한 사람의 적성에 맞게 직업을 정해주신다면 세상에 많은 이들이 고민과 실망을 겪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에게 직접 말씀을 전해줄 수 있는 모세가 없는 대신 우리 개인의 삶 속 경험과 동행 속에서 직접 가르쳐 주시고 알려주시려 그 모든 것들을 허락하고 이런 자유도 주신 것 같다고 생각해봅니다.
박해솔 자매 (파푸아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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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차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으로 올라가 있는 40일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요케 되자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금송아지로 된 우상을 만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멸할 것을 돌이키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모세의 이야기에 감복하며 성막을 만드는 데에 쓰일 재료들을 자원해서 넘기게 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느낀 건 과거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의지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에 집히고 눈에 보여야만 생겨나는 믿음 말입니다. 모세와 하나님이 40일간 보이지 않자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눈에 보이는 성막만큼은 오롯이 순종하며 차고 넘치게 패물들은 넘기는 모습들이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그려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잃어버린 노아의 방주를 찾고, 사라진 언약궤를 찾고, 홍해를 가로지르던 길목을 찾는 일들이 오늘날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이들을 찾는다 한들 이들이 우리가 갖는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란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안관선 목자 (파푸아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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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차 말씀에서 제게 제일 크게 다가온 것은 32장에서 야곱이 하나님께 에서를 만나기 두렵다고 기도하고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장면입니다.
야곱은 제 생각에는 복을 받기 위해 항상 발버둥(?)을 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 이삭에게서 형 에서의 축복을 에서인 척해서 빼앗았고 브니엘에서도 복을 줄 때까지 놓지 않겠다고 해서 씨름 후 결국에는 그 자리에서 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항상 불안함과 두려움뿐이었던 거 같습니다. 에서의 축복을 뺐고 집을 떠나야 했고 브니엘에서 축복을 받고도 그 뒤로 안 좋은 일들이 또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 약속하셨는데 왜 자꾸 안 좋은 일들이 생길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아마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행동하지 않아서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지난주 주일설교 말씀인 이런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이 다시 한번 생각났습니다. 아마 야곱 또한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했다면 하나님 안에서 걱정과 근심 없이 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2022년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그런 한 해를 보내야 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주희 자매 (구자랏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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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일 차 나눔입니다.
역대하 21장
여호람이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서른두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여덟 해 동안 다스리다가, 그의 죽음을 슬프게 여기는 사람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이 그를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으나, 왕실 묘지에 장사하지는 않았다.
역대하 22장
아하시야는 사마리아로 가서 숨어 있었으나, 예후가 그를 찾아 나섰다. 마침 예후의 부하들이 아하시야를 붙잡아 예후에게로 데리고 왔다. 예후가 그를 죽이니, 사람들은 “그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만 찾은 여호사밧의 아들이었다” 하면서, 그를 묻어 주었다.
그리고 나니, 아하시야의 가문에는 왕국을 지켜 갈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늘은 두 사람의 죽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호람은 왕위에 오른 뒤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착한 동생들을 칼로 죽이고 산당을 세워 백성들을 음행하게 하는 등 여호와를 버리고 악의 길로 행하였습니다.
결국 8년 동안 왕위에 머무르다 창자가 빠져나오는 중병에 걸려 죽게 되는데 그의 죽음을 아무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한편 아하시아는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사람들이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라며 그를 묻어 주었습니다.
이 두 죽음을 보면서 언젠가는 떠나게 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과연 어떤 죽음을 뒤로하고 떠나게 될까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고 여호와의 뜻을 구하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다간 자로 길이길이 기억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유양근 목자 (칸짜나 목장)